
다니엘 코엔(Daniel Cohen)의 『악의 번영(Le Prospérité du Mal)』은 현대 자본주의의 병리와 그로 인해 왜곡된 세계 경제 질서를 통찰력 있게 분석한 2010년에 국내에 번역된 책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코엔은 이 책에서 번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현대 자본주의의 허상을 파헤치며, 그로 인한 세계 경제의 불균형과 사회적 병폐를 드러낸다. 이 책이 한국에 번역된 것은 2010년이지만 2025년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 전략이 글로벌 경제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미국우선주의의 등장: 보호무역주의의 귀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무역협정 재검토, 관세 부과, 글로벌 공급망의 탈중국화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미국의 산업 경쟁력 회복을 시도했다. 이는 한때 자유무역을 주도하던 미국이 다시금 보호무역주의의 길로 회귀했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세계화 시대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적인 변곡점이 되고 있다. 다니엘 코엔은 현대의 세계경제는 지나치게 금융화되었으며, 실물경제와의 괴리가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른바 ‘가상 번영’은 실제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고, 이는 결국 대중의 분노와 정치적 극단주의를 불러왔다. 2025년 현재 유럽과 미국, 심지어 한국에서도 극우 정치세력이 부상하고 있는 현실은 이 책이 제시하는 경고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도 이러한 금융과 실물의 괴리가 진화하면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악의 번영』에서 “경제는 상호의존성을 기반으로 하며, 고립은 번영을 낳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차단하고 글로벌 가치사슬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곧 무역 전쟁으로 가는 길이고, 특히 중국과의 갈등은 디지털 기술, 반도체, 희토류 등 전략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며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악의 번영’이라는 역설
코엔이 말하는 ‘악의 번영’은 단순히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경제 정책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국가의 번영이 타 국가의 고통과 불균형 위에 세워졌음을 지적하는 개념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번영이 타국의 손해, 특히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의 성장 제약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보는 견해와 데자뷰 되는 면이 있다.
예컨대 미국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규제와 보조금을 강화했으며,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 기업의 미국내 생산시설 투자에 막대한 혜택을 약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글로벌 시장의 공정경쟁을 왜곡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는 상호 신뢰 기반의 교환 시스템에서 벗어나 점점 자국 이기주의로 치닫고 있다. 코엔은 이러한 구조를 “번영의 외피를 쓴 악의 구조”라고 경고한다.
세계화의 붕괴와 신자유주의의 종언
『악의 번영』은 세계화의 가치가 어떻게 붕괴되고 있는지를 통찰한다. 글로벌화는 원래 각국의 비교우위를 기반으로 한 상호이익의 확장을 목표로 했지만, 트럼프 이후의 세계는 경쟁보다 통제, 협력보다 차단을 선택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분열까지 불러왔다. 보호무역은 노동자 계층에게는 일시적인 희망처럼 보였지만, 전체 경제 생태계에는 장기적 침체와 혼란을 안겼다. 다니엘 코엔은 이를 ‘허망한 번영’이라 표현하며, 이는 결국 대중의 분노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경제적 민족주의의 위험성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정책 기조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민족주의의 부활을 촉진시켰고, 이는 유럽, 아시아, 남미에서도 유사한 흐름으로 재현되었다.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에 몰두하며 국경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고, 이는 세계 경제의 협력 구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코엔은 『악의 번영』을 통해 “진정한 번영은 타인의 고통을 딛고 이룰 수 없다”는 윤리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새로운 번영의 패러다임은 가능한가?
『악의 번영』은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가 촉발한 세계 경제의 균열과 그 미래상을 볼 수 있는 창문과 역할을 하며, 우리가 새로운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임을 시사해준다. 다니엘 코엔은 단순히 문제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호 협력과 윤리적 경제를 통해 진정한 번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팬데믹의 후유증과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인도와 파키스탄에서의 전쟁을 지켜보며 지정학적 위기 속에 세계 경제의 방향성과 그 대응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악의 번영』은 우리가 놓쳐온 근본적 질문—번영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다시금 던지게 만든다. 트럼프 행정부가 만들어 갈 세계질서의 방치나 재편,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 미국우선주의가 남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전혀 다른 방식의 번영을 상상해야 할 때다.
목차
1부 왜 서양인가?
1장 기원
2장 근대 세계의 탄생
3장 맬서스의 법칙
4장 해방된 프로메테우스
5장 영원한 성장
2부 번영과 공황
6장 전쟁의 경제적 귀결
7장 거대한 위기와 그 교훈들
8장 황금시대와 그 위기
9장 연대의 종말
10장 전쟁과 평화
3부 세계화의 시간
11장 인도와 중국의 귀환
12장 역사의 종언과 서양
13장 생태계의 붕괴
14장 금융 공황
15장 비물질적인 자본주의
책 내용중 일부
“경제학자 필립 마르텡과 그 공저자들의 분석은 국제교역이 전쟁의 위험을 전혀 감소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국제교역이 활발해지면 호전적인 국가가 경쟁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실제로 국가 간의 충돌 때 국제 교류는 필요한 물품을 다양한 곳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게 해준다.”p.10 –국제 교역으로 지탱해 가던 국가들은 중요한 부분이 단절될 때 생존을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
“한 강대국이 이웃 나라들을 지배하려고 하면 그때마다 그 강대국을 무찌르기 위한 동맹이 결성되었다.”p.16
“막대한 대출로 인해 서브프라임 위기를 일으킨 미국 가계의 과다한 소비욕구는 자본주의가 어떤 가치와 어떤 헛된 욕망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p.18
“소위 ‘가상세계’라 불리는 새로운 변화속에 서양은 참여했고 세계를 그런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 새로운 가상공간은 비물질적이며 정보와 통신 기술에 의해 주도되는 또 다른 세계화의 무대이다.”p.20 – 이러한 가상세계는 코비드19를 통하여 더 강화되고 보편화 되었다.
“유목사회는 단순한 이유에서 인구 증가가 쉽지 않았는데, 그것은 첫째 아이가 걷기를 시작한 후에야 다음 아이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정착사회는 대지가 부양할 수 있는 만큼 아이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었다. 풍요와 정착은 식량의 저장을 가져왔다. 잉여 생산물의 발생은 ‘게으른 계급’을 부양해주었다. 여기에는 왕, 관료, 성직자 그리고 전사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점차 농민층으로부터 이탈했으며, 이는 신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에 걸친 기술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p.31
“경제적 영역에서 봉건제는 14세기에 페스트(흑사병)가 대규모로 유행한 이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페스트는 매우 심각해서 유럽 인구의 거의 3분의1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러자 토지에 비해 노동력이 갑자기 부족해지면서 농민들은 새로운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p.48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모든 시대와 문명을 통틀어 중요했던 것은 바로 토지의 소유 여부였다.”p.62
“만일 영국에 막대한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미국의 광활한 토지와 아프리카의 노예가 없었다면 ‘프로메테우스’의 기적은 단기간에 끝나버렸을 것이다. 멜서스의 법칙은 극복되었다.”p80
“케인즈는 경제의 어느 한 부문이 위축되면 스스로의 악순환 과정을 통해 경제 전체로 파급된다고 보았다. 자동차의 구입 감소는 이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실업을 야기하고 이들이 지출을 줄이게 되면 다른 부문의 침체로 이어진다. 최초의 위기가 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위기의 승수효과’가 시작되면 정부만이 이를 저지할 수 있다.”p.119
“기술 진보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은 미용사들도 공장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생산성의 증가의 혜택을 누려온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미용 서비스를 계속해서 원하는 한 그들은 사람들의 부가 증가하는 것에 맞추어 요금을 올릴 수 있으며, 공장 노동자와는 달리 로봇이 자신들을 대체할 것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p134
“내적 안정성에 집착했던 중국은 유럽보다 먼저 시작했던 역동적 혁신을 그만두었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수십 년 전에 중국은 안정을 신택했고 안으로 침잠했다. 반면에 유럽은 그 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p.190
“소수가 경제를 지배하는 곳에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함께 섞인다면 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염병이 된다. 그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선거를 거치면서 소수인 사람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보게 된다.”p.217
“근대의 경제발전은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틀에 기반하고 있다.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자본(기계), 인간 자본(교육,공중보건) 그리고 효율적 제도(조직화된 시장, 공정한 사법 체제)등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p.222
“자본이 작동하는 형태는 변했다. 오늘날 자본은 ‘비물질적인’재화가 되었다. 즉, 연구개발, 광고, 유행, 금융이 자본이다. 오늘날 생산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물질적 재화이다.”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