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온 노인




보라,

그가 다가올 때 바람은 소리를 스스로 낮추었고

눈은 떨어지되 땅에 닿지 아니하고 정지해 있는 듯 했다.

그를 본 자는 말할 것이다.

“내 마음이 가벼워졌노라.”

또 이런 말도 했음직 하다.

“내 안의 어둠이 한 걸음 물러났노라.”

그러나 묻지 말라.

그를 본 자가 과연 몇이었는지를.

보는 눈은 많으나

알아보는 눈은 적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숨기려 애쓰지도 아니하였다.

다만 올 때가 되었기에 왔고

머물 때가 되었기에 머물렀을 뿐이다.

그날은 겨울이었다.

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림자를 거두었고

눈은 안개처럼 산을 덮어

길과 시간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다.

초저녁 무렵, 나는 점심때 먹은 멸치젓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직감하며 화전민이

버리고 간 집의 아궁이에 장작이며 삭다리를

있는대로 밀어넣으며 불을 때고 있었다.

작년 봄, 산에 들어올 때 반찬거리로 가져온

멸치젓이 상하여 식중독에 걸린 것 같았다.

온 몸이 찐빵처럼 부어 올랐고 불덩어리였다.

겨울에 눈오는 산을 내려가는 일은 위험했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뜨거운 방에서 땀을 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 이러고 있는 것이다.

불은 이글거렸으나 점점 작아보였고

나의 삶도 그와 같이 가물가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때였다.

문 앞에

무언의 시선이 있었다.

짐승이라 생각하였다.

굶주린 산짐승이

사람의 온기를 맡고 내려왔구나 하여

나는 순간적으로 부지깽이를 들었다.

그러나 그가 한 발짝 다가오자

사람임을 알았고

짐승보다 더 섬뜩한 것이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산속에서

이름 모를 사람과

단둘이 마주하는 일은

이빨을 드러낸 맹수보다

더 깊은 공포를 불러온다.

문 앞의 그는 말이 없었다.

말이 없었으되

그의 존재는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았고

오히려 머릿속의 소음을 말없이 쓸어내는 듯하였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잠시 곁불을 쬐어도

괜찮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하늘의 울림 같기도 하고

아버지의 음성 같기도 하였으며

듣는 이의 가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나는 대답하였다.

“들어오십시오.”

이 한마디로

눈이 그칠 때까지

여섯 날 정도가 이어진 것 같다.

내가 머무는 곳은

지리산 칠선계곡의 중턱,

사람은 떠나고

바람만 남은 산줄기 위

버려진 화전민의 집이었다.

그는 말하였다.

자신은

지리산 저 위 바위 속 어딘가에

머무른다고.

그곳은 집이 아니고

피난처도 아니며

수행처라 부르기도 부족한

바위틈의 굴이라고.

“그저

머물러도 산이 쫓아내지 않는 곳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의 이름은

시리우스라 했다.

나는 물었다.

“본명입니까?”

그는 엷게 미소지었다.

그 작은 웃음에

설명을 담으려는 듯 했다.

“별의 이름이지요.

그러나 사람도

별에게서 이름을 빌려 쓸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이름이 중요한 사람은

이미 이름에 갇힌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연대기처럼 말하지 않았다.

탄식도 아니었고

자랑도 아니었으며

회한도 아니었다.

그는 말하였다.

마치 바람이 냄새를 실어

지나온 길을 전하듯.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고

부모를 알지 못했으며

지나가던 거지가 주워

동냥의 수단으로 길렀다고 했다.

그러나 그 거지도

일찍 죽었다.

일곱 살부터

철길을 따라 걸었고

농작물과 밥을 훔쳐 연명했으며

때로는

자기보다 더 작은 아이에게서

이것 저것 빼앗아야 했다고 했다.

“그때는

선악을 몰랐습니다.

다만

살아 있음과

죽은 것의 차이만 알았지요.”

열두 살까지

거지 아이들과 함께 살았고

이후에는

자전거 수리점에서

잠자리와 밥을 받으며

심부름을 했다.

그 뒤로는 봉제공장을 떠돌며 검정고시를 공부해

고등학교까지 마쳤고

스무 살에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 후 원양어선에서

2년을 바다에 맡겼고

탄광에서

1년을 땅속에 묻혔다.

그는 말했다.

“바다는

인간의 욕망을 씻어내고

탄광은

인간의 오만을 부숩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들판에 집을 짓고

논 다섯 마지기를 샀으며

술집에서 일하던 여인과 함께

아들을 하나 두었다.

그러나

겨우 1년을 같이 산 아내는

산후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갓난아기를 홀로 키울 수 없었던 그는

불임이었던 군대 동기 부부에게 보낸 후

논과 집을 정리해 서울 신림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홀로됨은

처음이 아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서른에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에 들어섰고

밤에는 배움을 이어가 대학을 마쳤다.

서른다섯에 국비유학으로 미국에 건너가 2년만에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마흔에 국내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아내는 죽고 자식은

떠나보낸 나는 항상 공허했습니다.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해 일과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8년간 일과 공부에만 집중하여

행시 동기중 가장 빠르게 부이사관에 승진하여

정부의 핵심부서 국장이 되었다.

그러나 운명에 박힌 대못처럼 남아있던 아들이

어느날 찾아왔다.

아들을 맡았던 군대동기가 혈육의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다며

아이에게 모든 것을 알렸던 것이었다.

아들은

이미 스무 살이 되었으나

그의 눈에는 깊은 공허가 깃들어 있었다.

아들은 물었다.

“왜 살아야 합니까.”

이 질문을 남기며

해병대에 입대한다고 말하고

떠나버렸다.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그 뒷모습을 보며

시리우스의 마음은 무너져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지친 생을 놓고자 하였으나

자신의 의미와

아들의 질문에

답을 남기지 않고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종교의 책을 읽고

모든 철학의 길을 걸었으며

현자를 찾아 떠돌고

수행을 거듭하였으나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들었다.

마음 깊은 곳인지

영혼의 끝자락인지 알 수 없는

심연에서 울리는 응답을.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삶의 껍질이 아니다.

그의 지나온 길은

많은 이의 길과 다르지 않았다.

고통은 흔했고

상실은 일상이었으며

노력과 성취는 영혼의 허기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시리우스에게는

일반인과 다른 것이 있었다.

그는

사람의 말을 듣기 전에

그 사람의 침묵을 먼저 들었다.

그는

질문을 받기 전에

이미 대답이

상대의 가슴에

자라게 하였다.

그가 말할 때

그 말은 가르침이 아니었고

명령도 아니었으며

설득도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스며드는 어머니의 숨결 같았다.

여섯 날 동안

눈은 그치지 않았고

나는 묻고 그는 대답했다.

그가 말할 때마다

나는 알았다.

이 말은

그의 것이 아니며

나를 향한 것도 아니며

지금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의 말은

이미 오래전에

누군가의 가슴에서 자라

자연의 질서로 새겨졌던 것이며

지금은 다만

그의 음성을 빌려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말을

그가 말한 방식 그대로

여기에 적는다.

덧붙이지도

깎아내리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겠다.

이는

종교도 아니요,

교리도 아니고

인간 안에 있으되 스스로 찾지 못한

진실의 드러남이기 때문이다.

보라,

이제

그가 말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