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아들을 길러주었던 군대 동기로부터 비보가 도착했다. 그 소식은 두 아버지의 세계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무게의 비극이 담겨 있었다. 아들은 아직 찬 기운이 바다 위에 남아 있던 3월에 원양어선을 타겠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떠났었다. 그러나 원양어선에 오르는 일은 생각처럼 곧바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고, 승선 자격을 얻기까지는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은 바다 위에 선 자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원양어선 승선을 기다리는 잠시 조기잡이를 하는 쌍대고리배에 몸을 실었다고 했다.
그 배는 서해와 남해의 거친 물길을 따라 떠돌며 조업을 했고, 젊은 아들은 매서운 바람과 짠 소금기 속에서 하루하루 바다와 씨름하며 어부의 삶을 배워갔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꿈과 바다의 운명은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법이었다. 승선한 지 겨우 두 달이 되었을 무렵, 강풍으로 파고가 높아진 해무가 가득한 날 새벽, 조업을 위한 그물을 풀던 중 잘 못 밟고 있던 그물 한 가닥이 그의 발목을 휘감아 순식간에 그물롤러로 끌려갔고, 거대한 바다가 입을 벌리듯 그를 삼켜 버렸다고 했다. 동료 선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그물을 끌어올렸지만, 바다는 이미 한 사람의 삶을 자신의 깊은 어둠 속으로 가져가 버린 뒤였다. 그물을 다 끌어올리고, 몇 번이나 바다를 뒤졌지만, 차갑고 무심한 파도 위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그 젊은 아들의 시신은 끝내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조차 너무 커서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그의 입술은 굳게 닫힌 채 단 한마디의 위로도, 단 한마디의 탄식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그의 주변에서만 멈춰 버린 것처럼 그는 멍하니 하루하루를 흘려보냈고, 결국 한 달 동안 휴직을 내고 아들이 떠난 바닷가에서 매일 바다를 보며 멈춰버린 시간 속에 서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삶을 붙잡아 주는 닻이 되지 못하는 공직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그의 인생 속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끝났고, 동시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시간이 바다 저편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산으로 왔습니다.”
도망이 아니었고
포기도 아니었으며
세상에 대한 저주도 아니었습니다.
“산이 나를 부른 것도 아니고
내가 산이라 찾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내 안의 소리가
더 이상
도시에서 들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인간의 가족
시리우스는 폭풍 후의 폐허처럼 가족을 모두 잃은 자리에 홀로 남았다. 절규해도 돌아오지 않는 가족의 이름에 그는 숨을 쉴 수 없어 가슴을 뜯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슬픔의 늪에서 스스로 걸어나왔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만남이라는 기쁨의 사건이며, 떠남은 소멸이 아니라 형태의 변화임을. 우주만물의 진동이 우주 속 모든 일과 변화를 반주하는 음악임을, 그 아름다움과 슬픔과 기쁨의 연주속에 우리의 기억이 모두 녹아있음을 알았을 때, 그 이해가 슬픔의 무게를 견디게 했고, 그는 다시 하루를 살아낼 이유를 발견했다.
흙과 숨과 이어짐의 계시
1. 태초에 빛이 있었고, 빛 속에서 불이 타올랐으며, 불 속에서 작은 알갱이들이 태어났느니라.
2. 그 알갱이들이 흩어지고 모여 별이 되었고, 별이 스러져 흙이 되었으며, 흙이 모여 산과 바다가 되었도다.
3. 보라, 인간이여.
너는 흙에서 왔다 하나 단지 흙으로 끝나지 아니하며,
너는 사라진다 하나 완전히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4. 너의 몸을 이루는 알갱이들은 오래되었도다.
그것은 네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네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또 다른 형상을 이루리라.
5. 한때 그것은 네 조상의 뼈였고,
그의 심장을 뛰게 하던 살이었으며,
그의 눈을 빛나게 하던 피였도다.
6. 그것이 흩어져 흙에 스며들고,
물에 녹아 흐르고,
바람에 실려 떠돌다가
마침내 다시 모여 네 몸을 이루었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홀로라 말하지 말라.
네 안에는 수많은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고
수많은 생의 기억이 잠들어 있느니라.
8. 네가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
먼 옛사람의 숨이 섞여 있으며,
네가 마시는 물 속에
이미 세상을 건너간 이들의 흔적이 있도다.
네가 밟는 흙 속에
조상들의 몸이 흩어져 잠들어 있느니라.
이를 깨닫는 자는 외롭지 아니하다.
죽음을 두려워하되 절망하지 아니하며,
삶을 사랑하되 집착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는 이어짐이 끊어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니라.
9. 오늘 네 몸을 이루는 것들은
언젠가 흩어져 또 다른 아이의 뼈가 되고,
또 다른 생명의 숨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는 다리요,
흐름이요,
때가 되어 여문 열매이니라.
너의 가족 또한 같도다.
10. 열매가 떨어지고 썩었다하여
그 근원이 사라지지 아니하며,
몸이 스러진다 하여
존재의 흐름이 멈추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니 현실을 피하지 말라.
11. 시련을 저주하지 말라.
두려움 속에 웅크리지 말라.
네가 오늘 내딛는 한 걸음은
너만의 것이 아니요,
앞선 이들의 축적 위에 선 것이며
뒤따를 이들을 위한 토대가 되느니라.
12. 너의 선택은 너를 넘어 흐르고,
너의 용기는 혈맥을 따라 전해지며,
너의 비겁함 또한 그림자처럼 이어지느니라.
그러므로 바르게 서라.
13.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의미를 향해 걸어가라.
평온은 세상이 잠잠해질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이어짐을 아는 자의 심장에서 피어나느니라.
사랑과 희생의 길
1. 이제 사랑에 대하여 들으라.
가족을 우연이라 말하지 말라.
그들은 피로 이어진 시간의 강이요,
너를 거쳐 다시 흐를 생명의 통로이니라.
2. 네 아버지의 숨이 네 안에 있고,
네 어머니의 피가 네 몸을 돌며,
그들 안에 또 그들의 조상이 있었느니라.
3. 너는 한 점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진 선 위에 서 있도다.
이를 아는 자가
어찌 무심할 수 있으랴.
4. 가족을 신성히 여기라.
그들을 섬긴다 하여 비굴해지지 말고,
그들을 사랑한다 하여 약해졌다 여기지 말라.
5. 가족을 향한 사랑은 굴복이 아니요
가장 강한 결단이니라.
말에만 의지하지 말고
시간으로 사랑하라.
희생으로 사랑하라.
용서로 사랑하라.
6. 네가 가족을 위해 흘린 땀은
헛되이 증발하지 아니하며,
네가 가족을 위해 삼킨 눈물은
대대로 전해질 힘이 되느니라.
7.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길은
짧고 가벼우나,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길은
깊고 무거우며
마침내 충만으로 돌아오느니라.
8.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함은
단지 육신의 죽음을 말함이 아니라
자아의 교만을 내려놓는 결단을 뜻하느니라.
자기를 비워
사랑으로 가정을 채우는 자는
우주의 질서에 동참하는 자이니라.
9. 그러므로 인간이여,
이어짐을 기억하라.
겸허를 배우라.
사랑으로 자신을 완성하라.
너는 잠시 머무는 몸이나
영원한 흐름 위에 서 있으며,
작은 존재이나
거대한 질서 안의 고리이니라.
10. 오늘을 경건히 살라.
숨 쉬는 순간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곁에 있는 이를 소홀히 하지 말라.
흙과 물과 바람 속에서
조상을 느끼고,
별들의 속삭임 속에서
생명의 탄생을 바라보라.
그리하면 네 마음은 흔들리지 아니하고
두려움은 너를 삼키지 못하리라.
이는 인간에게 허락된 길이요,
평온으로 이르는 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