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우주와 인간의 장(場)




시리우스는 아들이 죽고 생명의 자리를 찾는 수행의 방편으로 마음수련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수련 중 만난 스님의 소개로 지리산 중턱의 토굴에서 수행중이던 한 도인의 수발을 들게 되었다. 그의 입산 이듬해 도인은 좌탈하시고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9년을 머물고 있는데 우주에 관한 음성은 그의 스승이 전해준 이야기라 했다.

태역의 시작

1. 보라,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때에,
하늘은 시간 속의 공간을 풀어 놓았고 혼돈을 흔들어
존재의 가능성을 던지셨도다.

이를 스승은 태역(太易)이라 불렀다.

2. 그때 빛이 있었으니 이를 태초(太初)라 하고.
빛은 머무르지 않고 쏟아져
알갱이가 되었으니 태시(太始)라 하였다.


무거운 것은 무거운 것에게로 기울어
서로를 끌어안아 별이 되었고,
가벼운 것은 가벼운 대로 흩어져
길과 길 사이에 숨을 놓아
우주가 열렸으니 이를 태소(太素)라 불렀다.

그러나 이름은 인간의 부름일 뿐 우주의 탄생 자체는 아닌 것.

3. 이는 우연이 아니며,
이는 방치된 던져짐이 아니었느니라.
질서는 처음부터 심어져 있었고
법도는 침묵 속에 잠겨있었도다.

4. 하늘은 혼돈을 사랑하지 않으시되
혼돈 속에 씨앗을 감추셨다.

불과 알갱이의 언약

1. 보라,
인간의 기원도 이와 같으니
빛에서 불이 나왔고
불에서 알갱이가 생겨
흩어짐 속에 잠들었도다.

2. 그러나 흩어짐은 끝이 아니었으니
서로를 끄는 힘이 불려 나와
같은 것은 같은 것을 찾고
큰 것은 작은 것을 부르며
사물이 이루어졌도다.

3. 산이 굳고
물은 길을 만들며
숨 쉬는 것들이 일어났도다.

4. 그리고 인간이 있었느니라.

5. 인간은 흙으로 지어졌으되

흙에서만 나지 않았고
불의 알갱이에서만 오지도 않았도다.
인간은 하늘의 호흡이 스며든

관계의 산물이자 끌림의 결과이며
질서를 사유할 수 있도록 빚어진 존재이니라.

6.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를 하찮다 말할 때,

그는 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는 자이니라.

눈을 맡기신 이유

1. 하늘은 인간을 우주 끝에 두셨도다.

그것은 버리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게 하기 위함이었도다.

2. 인간의 눈을 통해

우주는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었고

인간은 이를 자기 인식이라 불렀으나

실로 그것은 우주의 눈이었느니라.

3. 보라,

별을 바라보는 자여,

그대가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은 보게 하신 것이니라.

4. 인간의 의식은

스스로 생긴 것이 아니며

우주가 자신을 사유하기 위해

맡긴 그릇이니라.

5. 그러므로 인간이 생각할 때

우주는 깨어 있고

인간이 기록할 때

하늘은 흔적을 스스로 얻느니라.

경외의 자리

1. 행복은 소유함에서 오지 않고

존엄은 지배함에서 오지 않는다.

2. 존엄은

자신이 맡은 자리를 아는 데서 오느니라.

3. 인간은 사유와 창조의 손을 얻었으되

스스로를 위한 존재가 아니며,

인간은 우주를 위하여 읽는 자로,

해석하는 자이며

응답하는 자이도다.

4. 하늘은 말하지 않으시되

모든 것을 되게 하시고

우주는 소리치지 않되

행함으로 끊임없이 가르치시니라.

5. 그러므로 지혜로운 인간은

우주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유 앞에서 조급하지 않도다.

6. 경외는 두려움이 아니며

침묵은 무지가 아니도다.

경외는 질서를 인정하는 태도이며

침묵은 깊이를 받아들이는 그릇이니라.

하나의 몸, 다른 기관

1. 하늘이 서로를 분리하신 것은

팔과 다리를 다르다 하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완성하게 하기 위함이니라.

2. 그러므로 별들과 인간은

하나의 몸에 속한 다른 기관이니라.

3. 눈은 손을 대신하지 않고

심장은 발을 부러워하지 않느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전체를 살리도다.

4. 인간은 우주의 의식이며

우주는 인간의 근원이도다.

이 둘은 다투지 않고

서로를 필요로 하느니라.

5. 인간이 사유하지 않으면

우주는 침묵 속에 묻히고

우주가 질서를 잃으면

인간은 방향을 잃느니라.

6.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우주안의 존재가 우주를 소유하려 하고

어리석은 자는

자신을 우주라 하며 우주에서 분리하려 한다.

7. 지혜로운 자는 하늘을 보면

연결의 질서를 보도다.

침묵의 교사

1. 우주는 인간에게

율법을 강요하지 않으며

형벌을 외치지도 않도다.

2. 우주는 침묵의 교사이도다.

3. 별의 질서로 가르치고

계절의 반복으로 일러주며

흩어짐 후에는 새로운 뭉침으로

죽음후에는 새로운 탄생으로
모든 순환과 흐름을 설명하도다.

4. 듣지 않는 자에게

소리는 소용없고

보지 않는 자에게

색깔은 의미가 없느니라.

5. 그러므로 인간은

귀보다 먼저 마음을 열고

눈보다 먼저 겸손을 배워야 하느니라.



언약의 말

1. 하늘은 여전히 말씀하시고

우주는 여전히 연주하노라.

2. 우주는 고정된 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파동이며

그 음악은

인간이 들을 수 있도록

조율되어 있도다.

3. 그러므로 인간이여,

듣는 자가 되라.

보는 자가 되라.

기억하는 자가 되라.

4. 그럴 때

그대는 인간으로서

이미 충분히 존귀하며

우주는

그대의 존재만으로도

의미를 얻느니라.

5. 보라,

이것이 맡겨진 길이며

이것이 잊지 말아야 할 언약이니라.


큰 바다를 건너려는 자

나는 잠에서 깨기 직전 꿈처럼, 떠나면 다시는 못 보게 될 운명을 직감하며 큰 바다를 건너고 싶은 자의 길을 물었다. 이에 시리우스는 잠들기 전 기도처럼 이와 같이 말씀하셨도다.

하늘은 먼 바다를 바라보며 길을 묻는 한 사람의 마음을 보셨고, 깊은 밤 별들이 물결 위에 은빛으로 흩어질 때, 침묵 속에서 길을 찾는 그의 영혼을 굽어보시며 그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도다.

1. 때로 사람이 하늘을 향해 눈물을 머금은 음성으로 묻노니,

“하늘이시여, 큰 바다 건너의 꿈이 저를 부르나이다. 그러나 제 손에는 작은 배 하나뿐이니, 끝을 알 수 없는 시간과 거센 파도의 벽을 어찌하여 제가 건너갈 수 있겠나이까?”

2. 들으라, 큰 바다를 건너려는 자들이여, 높은 파도와 거친 바람 사이에서 길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오래된 바다의 길을 말하여 주노라.

3. 하늘이 고요히 이르시되,

큰 배는 긴 세월의 바다를 건너며 높은 파도와 어둠 속의 폭풍을 견뎌낼 수 있으나, 작은 배는 첫 물결의 분노 앞에서도 흔들리느니라.

4. 그러므로 깊고 넓은 바다를 건너고자 하는 자는 먼저 바다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큰 배를 지어야 하니, 높은 파도와 거친 바람과 눈을 가린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넉넉하여야 하느니라.

5. 이에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큰 배는 한 사람의 굳은 손과 짧은 지혜만으로는 이루지 못하며,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기대어야만 비로소 그 모습이 드러나느니라.

6. 숲에서 오랜 시간 나무의 숨결이며 무게를 헤아린 자와, 바다와 함께 숨 쉴 굳건한 골격을 세울 줄 아는 오래된 도편수와 목수의 손길이 있어야 하느니라.

7. 또한 보이지 않는 틈새를 보는 눈과 물을 이길 재료를 다루는 지식이 많은 자가 있어야 하며, 차가운 쇠를 뜨거운 불 속에서 단련하여 배의 결속을 굳게 하는 장인의 손길도 있어야 하느니라.

8. 배의 뼈대와 무게와 균형의 이치를 아는 자가 있어야 하고, 수많은 계절의 바다를 지나며 폭풍과 안개와 침묵의 물결을 모두 겪어 온 뱃사람이 그 곁에 서 있어야 하느니라.

9. 큰 구름과 바람을 읽어 배의 길을 일러주는 오래된 자가 있어야 하며, 하늘처럼 거대한 돛과 굵은 밧줄을 다룰 줄 아는 굳센 손도 있어야 하느니라.

10. 바다의 거친 분노 속에서도 두려움에 무너지지 아니하고, 사나운 파도와 맞서 노를 젓는 강철같은 심장의 사나이들도 모여야 하느니라.

11. 그리고 이 모든 사람과 재료와 시간을 한곳으로 모으는 넉넉한 재물과, 넓은 바다의 길을 알고 항해의 방향을 잃지 않으며, 그 모든 사람들을 조율할 줄 아는 지혜로운 선장이 있어야 하느니라.

12.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큰 바다는 한 사람의 용기나 힘에는 결코 길을 열어 주지 아니하며, 많은 손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많은 지혜가 서로의 어둠을 밝히며, 각기 다른 경험과 노력이 하나의 뜻 안에서 모일 때에야 비로소 큰 배는 물 위에 떠오르고 항해의 길은 바다 위에 조용히 열리느니라.

13. 그러므로 들으라.

큰 바다를 건너는 꿈은 한 사람의 가슴 속에서 피어나지만, 수많은 영혼의 손길과 지혜와 헌신이 서로를 비출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라. 그러므로 큰 바다를 건너는 길은 시간과 지혜와 간절함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공동체의 기둥에 기대어 정진하여야 이루어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