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시작
6일간의 폭설이 그쳤다고 생각된 날이었다.
나는 흑암의 심연속에 잠긴 듯 끝없는 잠의 바다에 끌려 들어갔다. 갑자기 의식이 깨었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고 몸은 가벼웠으나 눈꺼풀은 여전히 무겁게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풍선처럼 부어있던 몸의 부기는 빠져있었고, 마실 수 없었던 물에 대한 갈증이 밀려왔다.
잠은 쉼이자 치료이고, 동시에 가려짐이었다.
보라, 인간은 때로 쉬는 동안에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
깨어 있어야 할 때 잠들고, 묻고 있어야 할 때 안주한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옆자리를 더듬었다.
그러나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가 덮어주었다고 생각되는 이불마저 편 적이 없는 것처럼 방 구석에 가지런히 개어 있었다.
바닥의 온기는 없었고, 남아 있는 것은 공허한 자리와 알기 어려운 적막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언제 떠났는가. 새벽이었는가, 밤의 끝자락이었는가. 아니면 내가 잠에 빠진 바로 그 순간이었는가. 그것도 아니면 온적도 떠난적도 없는데 나 혼자 미몽에 빠져 있었던 건가.
보라, 떠남은 늘 조용히 이루어진다. 작별 인사는 소란스럽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이별일수록 말이 없다.
바람이 덜컥거리며 보온덮개를 덧댄 격자무늬의 나무 방문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이끌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작은 툇마루를 딛는 순간 바닥에 놓인 책 같은 것이 밟혔다. 누렇고 모서리가 다 헤어진 한지 고서였다. 책을 손에 들고 눈을 감았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고,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폐 깊숙이까지 겨울이 스며들었다.

책을 들여다 보니 몇 백년은 된 듯한 天地萬物調和論이라는 필사본 고서였다.
밖에는 세상이 모두 하나의 색으로 덮여 있었다. 하얀 눈이 허리까지 차 있었고, 산과 계곡과 하늘의 경계조차 지워진 듯 보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발자국이 아니라면, 그가 남겼을지도 모를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눈 위에는 어떠한 자국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그가 처음부터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라, 참된 스승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는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서게 만드는 질문으로 남는다.
나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차가움이 발끝에서부터 몸을 타고 올라왔으나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가 사라진 것도 아니요,
내가 홀로 남겨진 것도 아니요,
이제 내가 걸어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보라,
길은 언제나 스승이 떠난 뒤에 드러난다.
붙잡을 손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두 발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설 뒤의 하늘은 투명한 쪽빛처럼 맑았고, 그 맑음은 오히려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이제 누구에게 묻겠는가.’
‘이제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그러나 대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그가 남긴 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내면의 드러남을 응시하는 하나의 태도였기 때문이다.
보라, 가르침은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방식이다.
나는 다시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고 툇마루에서 들고 온 누런 한지에 붓으로 씌어진 의미를 알기 어려운 한자들과 나만이 덩그러니 방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준비되어 온 순간이 마침내 도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의 음성을, 누군가의 허락을.
보라, 인간은 기다림을 멈출 때 비로소 부름을 듣는다.
이 아침은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인간을 향한 함께 걸음의 날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기묘한 시간이 그 이훗날 내가 산을 내려가고, 세상으로 나아가 이 길을 걷는 자가 되리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하였다.

그때 밖에서 나는 꾸륵꾸륵 소리에 나는 다시 문을 열고 나서 감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부엉이처럼 생겼으되 털이 눈처럼 흰 새 한 마리가 가지 위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은 쌓인 눈과 하나가 되어 보이지 않고 고양이 눈처럼 생긴 커다란 눈과 꾸륵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특히 그 커다란 눈은 밤을 삼킨 자의 눈이었고, 침묵을 오래 품은 자의 눈이었으며 노인의 눈 같기도 하였다.
새는 한참 동안 비둘기처럼 꾸르륵거리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고, 마치 무엇인가를 묻는 듯, 혹은 이미 알고 있는 답을 확인하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푸드륵 하는 소리와 함께 날개를 펴 계곡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 순간, 나의 마음속에서도 오래 묵은 질문처럼 어머니의 탄식 하나가 날아올랐다.
“아야! 너는 새모냥 왜 그리 깊은 산으로 숨어들었느냐.”
그는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들려주기 위함이었는가. 남기기 위함이 아니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는가.
보라, 방황하는 자여. 길을 묻는 자는 언제나 멀리서 표식을 찾으나, 표식은 늘 가까이에 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것은 쉽게 지나치게 마련이다.
나는 그날,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책 몇 권을 넣은 배낭과 이불가방 하나, 옷가방 하나를 챙겨 들고 눈이 허리까지 쌓인 산을 내려왔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구르고 다시 일어서며 내려왔다. 산은 말이 없었으나, 침묵 속에서 나를 꾸짖고 있었다.
그동안 ‘너는 무엇을 붙들고 이곳에 남아 있었느냐.’ ‘배움인가, 도피인가.’ ‘소명인가, 두려움인가.’
나는 마음에도 없는 시험공부를 그만두었다. 책은 책상 위에 있었으나, 나의 영혼은 그 자리에 없었다. 입술은 암기를 반복했으나, 가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떠났다. 떠남은 도망이 아니라, 응답이었다. 삶이 나에게 던진 질문을 행함으로 드러내기 위한 순례의 시작이었다.
나는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갔다. 캘리포니아 롱비치.
빛이 넘치고, 욕망이 소리 내어 걷는 도시.
군대 동기의 도움으로 임시 거처를 마련했고, 일자리를 찾았다.
그곳에서의 노동은 고귀하지도, 추하지도 않았다. 다만 정직하였다.
시간과 노력을 주면 임금과 안전을 돌려주었다.
보라, 인간의 첫 배움은 언제나 노동 속에 있다. 손이 굳어질 때, 마음은 비로소 실체를 배운다.
식당에서 생활비를 벌며 살아가던 어느 날, 동기는 나에게 말했다.
“가래야, 너는 사람과 땅을 이해하는 눈이 있는 것 같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함 봐라.”
나는 웃었다. 시험이라는 말에 아직도 몸이 먼저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이것은 도피인가, 아니면 부름인가.’
보라, 인간의 운명은 늘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떤 때에는 고난으로, 어떤 때에는 권유로, 어떤 때에는 아주 평범한 한마디로 찾아온다.
나는 다시 책을 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합격을 넘어,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기여로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땅은 숫자가 아니었다. 땅은 기억이었고, 땀이었으며, 삶의 무게였다.
사람이 땅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을 얹는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합격은 끝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더 무거운 질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이 길을 내 나머지 인생의 길로 선택한다면
‘너는 이 앎과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의미를 위해 살 것인가.’
보라, 의미를 잃은 지식은 쌓는 순간부터 위험해진다. 사용되지 않는 지식은 오만이 되고, 자기만을 위한 지식은 폭력이 된다.
나는 작은 거래를 시작했다. 사람들의 사정을 들었고, 그들의 실패와 욕망과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집을 잃은 자의 눈빛을 보았고, 첫 집을 사는 이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부동산이란, 부를 사고파는 일이 아니라 공간속에서 안식을 찾는 여정을 중개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회사를 키웠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구축해 가맹점을 모집했고, 이 시스템은 미국 전역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나는 매일 밤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여전히 의미와 인간을 보고 있는가.’‘아니면 숫자만 보고 있는가.’
해외 지사를 세우고, 세계 각국으로 진출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성공이라 불렀다.
그러나 성공은 이름이 아니라 시험이었다. 더 큰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
보라, 부를 얻은 자보다 부를 견디는 자가 드물다.
나는 세계 최대의 부동산 회사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내 귀에는 여전히 그날의 꾸륵꾸륵 소리가 남아 있었다.
소리만 남기고 사라진 흰 새.
그 새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드러나지 말고, 방향이 되어라.’
‘머무르지 말고, 길이 되어라.’
보라,
인간이여.
너는 쌓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흘려보내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너의 지식은 다음 사람을 밝히기 위한 등불이며, 너의 성공은 다른 이가 넘어오도록 놓은 다리이다.
나는 이제 안다. 산을 내려오던 그날, 내가 버린 것은 시험공부가 아니라 두려움이었음을.
그리고 미국에서 얻은 것은 부가 아니라 사명(使命)이었음을.
그 흰 새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 시간 속에서 그 새는 사라진 적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소음 속에서, 질문이 필요한 순간마다 그 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자여, 너 또한 길을 묻고 있다면, 이미 옳은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두려워 말라. 길은 완성된 자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라, 걸으려는 자에게 스스로 드러난다.
보라,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분명해지고, 침묵이 길수록 진실은 무거워진다.
이것이 시리우스를 통해 내가 배운 삶의 길이며,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끝내 붙들어야 할 단 하나의 증언이다.
보라,
하늘과 땅 사이에 펼쳐진 광막한 세계를.
너희 눈에는 비어 있는 듯하나, 실로 그것은 관계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도다.
별은 홀로 빛나지 아니하고, 서로의 인력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빛을 보내어 생명을 잉태하였으며,
그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일으켜 세워 그 숨결을 이어가느니라.
태초에 질서가 세워졌고, 경계를 정하자 드러난 존재는
서로를 연결하는 지혜의 장(場)으로 묶였도다.
강은 제 길을 따르기에 바다에 이르고,
불은 제 자리를 지키기에 세상을 밝히되 태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서로의 손을 잡되 장(場) 안에 머물며,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말라.
이는 억압이 아니라 보호요,
속박이 아니라 존재를 지탱하는 울타리니라.
경계를 거스르는 순간, 먼저 무너지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너와 손 잡은 이를 지키는 관계의 장이니라.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우주의 질서는 흔들리지 아니하니
너는 다만 맡겨진 자리에서 숨 쉬며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일으키며, 공동체의 길을 따라
한 점 별처럼 머물다
때가 이르면 흩어져 또 다른 빛으로 이어지면 되느니라.
그리할 때 너는 우주의 운율 속에서 파동이 되고,
창조의 숨결 속에서 빛이 되리라.
또한 경계하라.
너의 이름 위에 이름으로 이름 쌓음을 경계하라.
이름은 너의 자리를 드러내기 위함이지
너를 가두기 위함이 아니니라.
이름이 높고 견고하면 스스로 만든 벽 안에서
자유를 잃고, 뜻을 잃으며,
마침내 이름과 함께 자신을 잃고 붕괴할지니라.
그러므로 이름을 붙들지 말고
너를 지으신 뜻을 붙들라.
그 뜻 안에 머무는 자는
비어 있음 속에서도 충만하며,
작은 자리에서도 영원을 누리리라.
용의 눈
미국에서 시작한 이 사명의 길이 무르익을 무렵 나는 한국지사 설립식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의 땅을 밟았다. 그러나 그것은 명목상의 이유였을 뿐, 내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행사를 마치자마자 나는 비서인 박실장에게 일주일간 모든 일정을 비우라 지시했고, 지리산 칠선계곡 인근에 조용한 펜션을 하나 잡게 했다.
나는 다시 그 산을 확인해야 했다. 젊은 날, 세상에서 밀려나듯 숨어들었던 그 계곡, 인간의 말보다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더 또렷하던 곳, 그리고 흔적없이 사라진 노인의 그림자를 찾아서. 기본적인 등산장비를 준비시켜 칠선계곡을 따라 천왕봉으로 올라가려는 것이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그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생을 마치기 전 꼭 다시 마주해야 한다고, 그렇게 매일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펜션은 손쉽게 예약되었지만, 칠선계곡은 입산이 통제되어 들어갈 수 없었다. 예약 가이드제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나의 목적과 일정에 맞지 않아 다른 방도를 찾았다. 결국 박실장과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계곡 입구를 우회했고, 산 비탈을 타고 숲 그늘로 숨어들었다. 나무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깊은 숲을 지나 계곡에 들어서자 세상은 갑자기 태고의 침묵으로 돌아갔다.
물은 에메랄드 색이되 물때하나 끼지 않은 투명한 물속의 바위들, 물에 드리워진 나뭇가지에 자리잡은 초록색 이끼들, 물위를 아른거리는 안개들, 계곡을 떠도는 청아한 소리, 그곳은 생과 사가 분리되기도 전, 인간이 나오기도 전의 신령한 정령만이 머물 수 있는 그런 곳인데, 이렇게 세속에 물든 나를 다시 받아준 것이다.
지리산 중턱에 이르러 내가 머물던 화전민 집을 찾았으나 집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었다. 나무기둥들이 한쪽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는 것이 아무래도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나 면사무소 직원들이 범죄가능성을 우려해 철거한 것 같았다. 인간의 빈 터에서 느껴지는 그 쓸쓸함과 적막함이 가슴을 파 후비고 들어왔다. 사람이 떠난 빈 집터, 삶이 철수한 흔적만큼 삶의 허무를 절절히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있을까.
나는 한참을 토방돌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자 기억이 열렸고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조용히 흘렀지만, 그 무게는 돌처럼 무거웠다.
“박실장, 가자.”
나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감추고,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며 먼저 길을 재촉했다.
칠선계곡은 인간이 사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태초의 숨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누구나 그곳에 발을 들이는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가 부끄러워질 것이다. 길은 사라지고 바위와 물만이 오르는 길이 되어줄 뿐이다. 가을이었지만 우리는 아이젠을 착용해야 했고 고통속의 순례자들처럼 우리의 숨은 차올랐지만 마음은 더욱 맑아졌다.
천왕봉골과 마폭포를 지나 칠선골에 이르렀으나,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굴이나 바위틈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천왕봉 정상까지 이르렀다. 거센 비바람이 인간의 체온과 생각을 모두 앗아가려는 듯 미친 듯이 훑어갔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의 나는, 정말 죽기 직전의 미몽을 꾼 것이었을까.’
천왕봉 정상은 항상 산을 타고 오르는 거센 비구름에 인간의 머뭄을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 텐트를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비바람은 차가운 진눈깨비를 동반한 가을비가 되어 파도처럼 때려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일단 방향은 반대이지만 가까운 장터목 산장으로 내려가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차가운 늦가을 눈비는 밤새도록 지붕을 흔들었고 내 안은 한 순간도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습한 구름은 여전히 뼛속까지 스며들 만큼 차갑게 산을 덮고 있었으나 눈비는 그쳐 있었다. 우리는 함양 마천에 펜션을 잡아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천왕봉을 거쳐 다시 칠선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어제 내린 눈비로 바위들은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고, 우리는 네발로 기어 내려오듯 한 걸음 한 걸음 더듬어 내려왔다.
이렇게 마폭포에 이르렀을 때, 박실장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회장님··· 저기를 좀 보십시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서로 마주 기대어 놓은듯한 큰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는 내려가는 계곡을 등지고 산 정상을 바라보며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바람을 막아주면서도 앞쪽에 약간의 햇빛을 받아들이는 자리. 올라올 때는 보이지 않지만 내려갈 때는 보이는 자리.
그 순간 나는 그 바위 앞쪽으로 빛이 뻗어나오고 있다는 착시를 느꼈다. 눈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오래전부터 나를 이곳으로 불러온 힘처럼 느껴졌다. 이곳에는 분명 무엇인가가 있었다.
“박 실장, 올라가자.”
내 목소리는 나 자신도 놀랄 만큼 단호했다.
“회장님, 위험해 보입니다. 제가 혼자 확인하겠습니다.”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우리는 폭포 옆 경사면을 따라 옆으로 이동했다. 물안개가 피부에 스며들었고, 공기는 기묘할 정도로 무거웠다. 비탈을 짚고 바위를 오를수록, 주변의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심장 박동만이 또렷해졌다. 마치 이곳이 세상과 분리된 경계인 듯했다.
내가 먼저 바위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바위의 앞, 어둠이 숨 쉬는 내부를 들여다본 순간,
나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뒤로 넘어졌다.
“박 실장! 올라오지 마!”
나는 본능적으로 박실장에게 외쳤다.
그 안에는 인간의 흔적이 있었다.
반쯤 부서진 뼈, 세월에 깎여 절반만 남은 해골. 노인이 입고 있었던 것과 같은 회색 누비 두루마기는 이미 죽음과 함께 썩어, 겨우 몇 조각의 천만이 남아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그 천 조각들은 마치 마지막 숨결처럼 미약하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공포에 질려 박 실장을 막아 세운 이유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다.
썩은 천 사이로, 어둠을 찢고 드러난 그것,
핏빛으로 응축된 보석.
전설 속에서만 전해지던 ‘용의 눈’이라는 레드다이아몬드였다.
그 붉은 보석은 단순한 광물이 아니었다. 살아 있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척추를 타고 감전된 듯 불같은 전기가 흘렀던 것이다. 몸은 얼어붙었고, 숨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저앉으며 넘어졌고 박실장을 막은 것이다.
박실장이 이것을 봤다면 둘 중 하나는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박 실장을 막았다.
그가 보지 않도록.
그의 운명이 이 붉은 시선과 얽히지 않도록.
저 뼈가 정말 노인의 것이라면,
그는 언제부터 ‘용의 눈’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노인이 스스로를 시리우스라 불렀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제어할 수 없는 응축된 에너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노인은 재앙을 봉인하고 지키는 자였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